“불난 데 기름 붓고, 책임은 남 탓”… 국민의힘, 4·3 앞에서 윤리 잃다
국민의힘 제주도당이 장동혁 대표의 영화 ‘건국전쟁2’ 관람 논란에 대해 “여야와 4·3 단체가 함께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한마디로 사과 대신 ‘같이 보자’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이미 국가가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사실을 확정한 사건 앞에서, 그 제안은 사과가 아니라 ‘책임의 흐림’으로 읽히면서 논란을 더 부추기고 있습니다. ■ “정치 선동 말고 함께 보자” 국민의힘 제주도당은 10일 성명을 내고 “장동혁 대표는 영화 관람 이후 4·3을 왜곡하거나 폄훼한 적이 없다. 관람만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건 정치적 의도”라며, “언론이 단죄하듯 몰아세우는 건 정치적 자유 침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4·3은 이미 국가 보고서로 결론이 난 사건입니다. 그 보고서와 반대되는 논리를 담은 영화를 야당 대표가 관람한 순간, 그것은 ‘개인의 관람’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가 됩니다. 문제 핵심은 발언이 아니라 행동, 그 상징이 지닌 무게입니다. ■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공적 책임” 도당은 이어 “표현의 자유를 두고 사과를 요구하는 건 과도하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권리이지, 정당의 방패가 아닙니다. 정치 지도자의 언행은 공적 판단이며, 사회적 신뢰를 담보로 합니다. 자유를 말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적 자리에서 그 자유를 말했으면, 반드시 책임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그게 정치의 윤리이자, 최소한 도의입니다. ■ “언론 단죄” 운운… “건드리지 마라?” 더구나 도당은 “언론이 단죄하듯 몰아세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검증은 처벌이 아니라, 공적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사실이 다르다면 증거로 반박하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단죄’라는 단어를 꺼낸 건 단순히 반박 수준이 아니라, 비판을 제어하려는 언어적 시도로 읽힙니다. 이건 표현이 아닌 태도의 문제입니다. 공적 행위를 한 정당이 검증을 받는 건 자유 침해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입니다. 그런데도 ‘자유’를 외치며 그 의미를 스스로 훼손한다면 이는 자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방패로 쓰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경고처럼 들리는 말의 끝에는 두려움이, 그리고 책임 회피의 의도가 겹쳐 있습니다. ■ “함께 보자”는 제안, 책임의 회피 “정치 선동 말고 함께 보자.” 도당은 이 말을 대화의 제안처럼 포장했지만, 그 속엔 ‘면피’의 계산이 숨어 있습니다. 공동관람은 토론의 출발점이 아니라 책임의 분산이라는 말입니다.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 당이 스스로 주체가 아닌 ‘참가자’로 물러나는 순간, 문제의 초점은 흐려집니다. ‘함께 보자’는 말은 포용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나누자는 요청에 불과합니다. ■ “정쟁 피로감” 호소, 그러나 누가 만들었나 도당은 “민주당이 4·3을 정쟁 도구로 악용해 도민들이 피로감을 느낀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4·3을 정치의 무대에 다시 올린 건 국민의힘 자신입니다.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된 영화를 선택했고, 그 논란을 정쟁으로 키운 것도 그들입니다. 정치의 피로를 말하려면, 먼저 피로의 근원을 직시해야 합니다. 책임을 떠넘기는 언어는 설득이 아니라 회피일 뿐입니다. ■ 자유의 언어로 책임을 숨겼다 국민의힘은 ‘자유’를 말했고 ‘피로’를 언급하며 ‘함께 보자’ 권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말의 끝에는 언제나 책임 회피의 그림자가 따라붙었습니다. 4·3은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이미 기록되고, 확인된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그 기록을 다시 논란의 무대 위로 끌어올린 순간 정치는 기억을 팔고, 진실을 흩뜨리는 장사를 시작한 셈입니다. ‘자유’라는 말, 그 자체는 옳습니다. 누구도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진실의 무게 위입니다. 기반을 잃은 자유는 결국 공허한 구호가 됩니다. 그리고 오늘, 국민의힘은 그 말을 증명했습니다.
2025-10-10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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